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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 간다고 쓸 수도 있는데, 그렇게 쓰기에는 군대를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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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가장이다. 엄마아빠는 둘 다 고아라고 했다.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고 결혼했다고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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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, 두 분은 버스 사고로 돌아가셨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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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었을까. 일곱 살짜리 동생과 두 살짜리 동생을 위해서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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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부를 하고, 새벽엔 배달을 하고, 다섯 평짜리 방에서 셋이 잤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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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. 수급자비도 정부에서 줬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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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유, 기저귀, 대부분 그런 걸 사는데 썼다.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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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. 한 달에 오만원, 많은 돈은 아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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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그것도 주인집 아줌마 명의였다. 그리고 몇 년 뒤에 아줌마가 나를 앉혀두고 말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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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6:1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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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줌마
아니야, 잘 들어.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. 그래서 과외를 하렴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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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6:1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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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나이에 몸이 상하면 나중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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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도 커서 다섯평에서 자기도 힘들 텐데, 돈 많이 벌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라고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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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줌마 덕에 믿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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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나는 믿기 어렵게도 서울대에 붙었다. 물론 기회균등 전형이었지만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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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외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. 한 달만에 내 손에 6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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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교에서는 생활비 장학금을 줬다. 정부에서도 아직 지원을 끊지 않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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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.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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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동생들과 며칠 전에 아줌마를 찾아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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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구마 케이크랑 음료 세트를 양 손에 들고 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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큰 동생은 이제 고3이다. 작은동생은 이제 중학생이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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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계산하더니 아줌마는 정말 빠르게 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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