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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밖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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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빈촌 어귀에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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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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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,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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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없고,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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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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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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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나
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적 없다. 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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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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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생
누나야, 내가 잘못 했다. 다시는 안 그럴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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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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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,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가게로 내려와 버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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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튿날도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, 누나가 동전 한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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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나
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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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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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날 저녁 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치길래,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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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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얘들아,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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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나
고맙습니다만, 집에가서 저녁을 먹을래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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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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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나
얻어먹는 버릇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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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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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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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날,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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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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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의 집사정을 알아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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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마 전에 서촌에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리로 이사와 궁핍속에 산다는 것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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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점에서 바느질 꺼리를 맡기면,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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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린 남매가 타박 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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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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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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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그날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지만,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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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날, 순덕 아지매가 가게앞을 지나가는 남매에게 묻자,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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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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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고, 봉임이 아들 딸을 이렇게 만나다니, 천지신명님 고맙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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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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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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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4: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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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,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 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자루씩 갖다주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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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 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,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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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덕 아지매는 관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이라는 것을 알아냈고,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 개는 아얘 만두피를 찢어놓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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